-태권도는 인간 존중, 정의의 윤리, 인류공동체적 가치를 품어야 한다. 태권도 지도자는 단순히 무도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폭력을 넘어서 평화를 가르치는 사람, 집단의 충성이 아닌 정의를 가르치는 사람, 기술에 앞선 예의와 철학을 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일본의 무사도(武士道)는 ‘싸우는 기사의 길(士道)’로서 사무라이 계급의 정신적 지주였다. 무사도의 본질은 충성(忠誠), 용기(勇氣), 명예(名譽), 검소(儉素), 인내(忍耐), 의리(義理) 등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이며 윤리적 가치가 강조되었으며, 단순한 전투 기술이 아니라 전사로서 지켜야 할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니토베 이나조가 저술한 '사무라이' 본문에 수록된 사진
“지(智), 인(仁), 용(勇)은 무사도를 지탱하는 세 개의 기둥이다. 다시 말해 무사는 행동하는 사람이었으며 학문은 행동의 범위 밖에 있으므로 무사의 직분과 관계가 있을 때만 필요한 것이었다“.(니토베 이나조)
중국 명나라의 유학자이자 사상가로 왕양명은 ‘지행합일(知行合一, 지식과 실천하는 것은 하나다)’이라는 원리는 실천적 무도 정신의 핵심이었다고 주장했다.
과거 무사도의 이러한 실천성과 집단 윤리는 전장에서 생명을 걸고 싸워야 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강력한 결속력과 공동체적 윤리로 정착되었다. 한 사람의 전사가 아닌, 하나의 집단으로서 움직이는 정신이 전투력과 충성심을 극대화하는 것처럼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태권도 수련에서도 긍정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수련생들에게 신의와 책임감, 강인한 정신력을 심어주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사도 철학의 이면에는 심각한 결함이 존재한다. 바로 도덕적 성찰이 결여된 충성과 폭력의 정당화이다. 무사도는 충성의 대상을 ‘공동체’ 혹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설정했지만, 그 충성의 대상은 권력자와 지배층이었다.
이로 인해 무사도의 윤리는 개인의 도덕적 판단보다 집단의 명령을 우선시하는 구조로 고착되면서 개인의 양심은 침묵하고, 집단의 폭력은 정당화되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무사도 정신은 제국주의 전쟁과 학살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논리로 작용되었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충성 의식은 집단적 학살과 침략에 대한 반성을 무력화시켰으며, 지금도 일본을 지탱하고 있는 정신문화의 일종이다.
이는 무사도가 도덕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한 사례이며, 철학적 체계의 근본적인 결함을 드러냈다. 무사도의 충성 개념은 비판의 가능성을 배제하였고, 불의한 권력에도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는 위험한 이념으로 나타났다.
니토베 이나조 지음, 양경미-권만규 옮김 책 표지
이러한 점에서 무사도는 공동체 윤리의 탈을 쓴 권력 중심의 폭력 철학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단결을 강조하는 집단 윤리는 자칫하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정의에 대한 성찰을 무디게 만들며, 폭력적 집단주의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권도 철학의 역할은 무사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간 존중의 정신을 기반으로 연구·발전해야 한다. 태권도는 단순히 일본 무도나 서양 스포츠를 모방한 종목이 아니라, 고유한 철학적 기반을 지닌 대한민국의 대표 무도이기 때문이다. 태권도 철학의 핵심은 인간 존중, 자기 수양, 정의 구현, 공동체와 인류에 대한 기여로 긍정적 발전을 이뤄가고 있다.
태권도의 ‘예(禮)’는 권력에 복종하는 예가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공정함을 지키는 윤리적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태권도의 ‘인(仁)’은 집단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정신을 의미한다. 무사도가 권력 중심의 윤리였다면, 국기태권도 철학은 인간 중심의 윤리를 주장해야 한다.
또한 태권도를 수련하면서 배우게 되는 것은 “상대를 이기기 전에 자신을 이겨라”는 자제력과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성찰의 훈련이며, 태권도의 정신은 내면의 성장과 인간으로서의 품격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태권도가 무사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차이가 된다.
#폭력의 미화에서 인간 존중으로
태권도가 현대 세계적인 스포츠이자 무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포츠퍼슨십(Sportspersonship)'이라는 가치와 결합했기 때문이다. 스포츠퍼슨쉽은 승패를 넘어 상대를존중하고,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정신이며, 서로의 감정을 매너있게 나타내는 예의매너이다.
진정한 무도인은 상대방을 적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로 인식해야 하며, 인간의 존엄과 공정성을 앞세워야 한다. 이러한 가치관은 무사도 철학이 가진 폭력적 집단주의와 가장 뚜렷한 대조점을 이루게 된다.
따라서 태권도 지도자는 단순한 기술 전수자가 아니라 윤리와 철학을 전하는 스승이어야 한다. 경기장에서의 승패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품격과 태도를 가르칠 수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무도 단체들이 일본 무도의 전통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지도자라면 무사도의 장점(실천력, 공동체 의식)을 취하되, 그 한계(폭력의 정당화, 권력에의 복종, 도덕적 무감각)는 분명하게 경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스포츠 지도자는 다음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첫째, 집단 충성보다 수련생의 성장과 인권, 자율성을 존중한다.
둘째, 태권도를 통해 국가 중심이 아닌 인류 공동체적 가치로 확장한다.
셋째, 존중과 품격을 우선하는 훈련 문화를 만든다.
강유진 사범이 경북 안동의 한 숲 속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
이제는 태권도 철학으로 전통을 넘어 미래로 나가야 한다. 무사도는 실천적 행동 철학이라는 점에서 배울 가치가 있지만, 권력에 복종하고 마치 조직 폭력집단처럼 사회적 약한자를 대상으로 폭력을 정당화한 역사적 한계를 지녔다.
태권도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인간 존중, 정의의 윤리, 인류공동체적 가치를 품어야 한다. 태권도 지도자는 단순히 무도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폭력을 넘어서 평화를 가르치는 사람, 집단의 충성이 아닌 정의를 가르치는 사람, 기술에 앞선 예의와 철학을 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