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대회를 단순한 경쟁의 장이 아닌, 창의적 실험과 성장의 무대로 전환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생활체육 대회가 이런 실험의 장으로 진화할 때, ‘발전’이라는 말은 비로소 생존의 수사를 넘어, 진정한 의미의 변화와 확장을 향하게 될 것이다.
요즘 태권도 대회는 전국 어디서나 열린다. 협회장기, 시장기, 교육감기, 연합회장기까지 이름만 다를 뿐, 형식은 거의 비슷하다. 주최 측은 하나같이 “태권도 발전과 저변 확대”를 내세우지만, 정작 수련생과 학부모들은 되묻는다. “태권도는 대회가 많네요. 이거 다 참가해야 하나요?”
2000년대 이후 정부는 생활체육을 국가 핵심 정책으로 육성해왔다. 이에 따라 각 지방체육회와 협회는 ‘사업 실적’과 ‘지원금 확보’를 위해 종목별 대회를 꾸준히 신설했다. 태권도 역시 이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대회의 수는 늘었지만, 대회의 질은 정체되었다. 경기는 규격화되고, 참가자는 늘었지만, 그 안에서 무엇이 교육이고 무엇이 단체 홍보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수많은 생활체육 태권도 대회. 발전의 언어 속에 ‘생존의 논리’가 숨어 있다.
대회는 단체의 활동을 증명하고, 예산을 소진하며, 회원과 지도자를 결속시키는 ‘생존의 장치’로 작동한다. 참가비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소규모 후원금이 결합되면서 대회는 일종의 경제 구조로 기능한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태권도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대회는 본래 수련의 연장선이자 교육의 장이었지만, 지금은 종종 조직의 존속을 위한 절차로 변질되고 있다. 아이 한 명이 몇 만 원의 참가비를 내고, 겨루기·품새·격파 중 한 종목을 선택해 2분 남짓의 경기를 치른다. 그 짧은 시간의 경험이 교육인지, 이벤트인지 묻고 싶어진다. ‘경험을 위해 나간다’는 말은 이제 교육의 언어이자 참가를 정당화하는 수사가 되었다. 결국 ‘발전’이라는 단어는 대회 수의 증가를 의미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교육의 본질은 점점 희미해졌다.
최근 열린 제7회 계명대학교 시범단 동문대회는 기존 대회의 틀을 과감히 비틀었다. 작년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세 명이 한 팀을 이루어 릴레이 형식으로 겨루는 단체전으로 진행되었다.
제7회 계명대학교 시범단 동문대회. 격파와 품새를 결합한 새로운 단체전 형식이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고등부 기준으로 첫 번째 경기는 체공 도약 격파(돌려차기 3단계), 두 번째는 수직축 회전 격파(540도 뒤후려차기 3단계), 세 번째는 수평축 회전 격파(제자리 뒤공중 돌아 앞차기 1단계)로 구성되었으며, 네번째는 3명의 선수가 3가지 부문(체공도약, 수직축회전, 수평축회전)을 각각 한 부문씩 맡아 자유롭게 난이도를 선택하여 기술을 수행하는 단체종합격파가 치러졌다. 만약 2대2 동점이 되면 품새 단체전으로 승패를 결정했다. 모든 경기는 1분 이내에 시연해야 하고, 5판 3선승제로 이루어졌다.
이 형식을 고안한 권도헌 격파위원장은 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생활체육 대회에 맞게 난이도를 조정하다 보니,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면서도 교육적 의미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품새를 필수로 배우는 점도 고려해, 격파 안에 품새 요소를 넣게 되었죠.”
권 위원장은 이번 형식을 단순한 경기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태권도의 국제 경쟁력과 무도적 정체성 회복을 위한 시도로 보았다. 그는 “현재 겨루기는 올림픽 정식 종목에 포함되어 있지만, 자유품새는 일본의 가라테 가타처럼 무도적 완결성보다는 체조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며 “격파와 품새를 결합한 단체전이야말로 태권도의 역동성과 무도성을 함께 보여줄 수 있는 형식”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발상은 거창한 담론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사실 출발점은 도장 아이들이었습니다. 축구로 휴관이 생기며 고민하다가, ‘골이 들어가면 이긴다’는 단순한 즐거움을 태권도에서도 구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기존 팀대항 종합경연은 관중 입장에서 승패를 바로 알기 어려웠다. 몇 분의 경연이 끝난 뒤 심판의 채점 결과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새로운 형식의 격파 단체전은 한 선수의 경기가 끝나면 즉시 승패가 갈린다. 이 즉각적인 결과는 선수와 관중이 함께 환호하게 만들고, 팀 전체가 하나의 소속감으로 묶이게 하는 효과를 낳았다. 결국 이번 대회는 생활체육적 접근성과 무도적 정체성, 그리고 관객 참여의 즐거움을 결합한 실험이었다. 경기장은 역동적이었고, 관객의 호응과 선수의 몰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태권도 대회의 진정한 발전은 대회의 수가 아니라 형식의 전환에서 찾아야 한다. 계명대 시범단 대회처럼 관객과 선수가 함께 몰입할 수 있는 구조, 기술·협력·소통이 공존하는 방식이야말로 태권도의 교육적 가치와 공익성을 동시에 실현하는 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계명대 시범단 동문대회처럼 똑같은 형식의 대회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각 단체는 자신들의 특징과 철학을 살려 새로운 경기 방식이나 시도를 도입함으로써 신선함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런 변화야말로 태권도 대회를 단순한 경쟁의 장이 아닌, 창의적 실험과 성장의 무대로 전환시키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생활체육 대회가 이런 실험의 장으로 진화할 때, ‘발전’이라는 말은 비로소 생존의 수사를 넘어, 진정한 의미의 변화와 확장을 향하게 될 것이다.
[이용우 필자 주요 경력]
-계명대학교 태권도학과 학사 취득
-한국체육대학교 석사-박사학위 취득
-대한태권도협회 교육강사
-태권도진흥재단 외부전문강사
-유네스코 국제무예센터 무예지도자
-대구한의대학교 출강
-대구가톨릭대학교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