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무사’ ‘충효 청년’ 화랑 이미지, 태권도에 덧씌워
-민족주의-국가관 강조한 일본 군국주의 무도교육과 비슷
2000년대 초 충북 진천군이 '화랑'을 내세워 '태권도 본향'을 주장하고 있다.
1600년 전, 고구려와 백제에는 없었지만 신라에만 있었던 군사 단체(제도)가 있었다. 바로 ‘화랑(花郞)’이다. 자료에 따르면, 화랑은 ‘꽃처럼 아름다운 남자’라는 뜻으로, 원래 ‘원화’라고 하는 여성 우두머리들이 그들을 따르는 젊은이들을 거느리는 인재 양성제도였다.
진흥왕은 기존 화랑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해 귀족 청소년들의 엘리트 군사 조직으로 개편했다. 외모가 단정하고 품행이 바른 15세 이상의 남자들만 지원할 수 있었다.
화랑들은 명산대천을 순례하면서 무술을 연마하고 심신을 수양하며 진취적인 기상을 갈고 닦았다. 그들이 무예를 두루 섭렵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화랑에 온갖 이미지 덧씌운 민족 문화주의
화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역사학자는 신채호(申采浩)와 안학이 대표적이다. 신채호는 화랑을 뛰어난 무사(武士)이자 우리 민족정신의 화신(化身)으로 보았다. 민족주의 국학자 안확은 『조선무사영웅전』(1919)에서 “살생유택으로 표현되는 관인(寬仁)의 정신, 그리고 충신(忠信)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화랑도라는 이름의 우리 고유의 무사도는 서양의 기사도보다도 훨씬 뛰어나다”며 화랑들을 찬양했다.
그 후 화랑이 ‘한민족의 위대한 청년문화’로 떠오른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0년 중반부터다. 전쟁을 겪으면서 청년의 애국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육군본부 정훈감이었던 이선근 대령(훗날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에게 한국사에서 청년문화의 유산을 발굴하라고 지시했다.
KBS가 2016년 방영한 드라마 '화랑'. 사진 캡처:KBS
이에 따라 이 대령이 지체 없이 『화랑도연구』(1954)를 펴내면서 화랑은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청년문화의 유산으로 인식됐고, 박정희 정권을 거치면서 호국(護國)의 꽃으로 일컬어지게 됐다.
1970년대 문교부가 발간한 『체육자료 총서』와 국기원이 발간한 『태권도 교본』을 보면 화랑과 태권도의 연관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처럼 민족문화론을 바탕으로 삼은 관용(官用) 사학은 화랑정신을 윤관과 묘청뿐만 아니라 3·1 운동의 정신에까지 연관시키고, 여기서 더 나아가 ‘애국·멸공 정신’의 구심점인 육군사관학교 소재지를 ‘화랑대’로 칭했다. 박정희 정권과 유착한 학자들은 화랑을 신라통일의 주역으로 내세우며 ‘화랑정신’을 ’10월 유신정신’으로 승화하기도 했다.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던 시절, 일본의 근대 교육은 철저히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뤄졌다. ‘근대 국민 만들기’라는 명목 아래 소풍도 군사교련처럼 실시했고, 무도교육이 강화됐다. 1970년대 우리나라 교육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풍조는 태권도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 출간된 『태권도 교본』을 보면 태권도의 역사와 정신이 마치 화랑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처럼 기술되어 있다.
이에 따라 ‘화랑=태권도’로 인식되기 시작됐고, 그 당시 청년들의 생활규범이었던 세속오계가 태권도정신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경주와 진천 등 화랑과 관련 있는 지역은 태권도 발상지, 태권도 본향이라고 할 정도다.
#'화랑=태권도' 주입 ‘견강부회’ 사라져야
하지만 이제 화랑과 태권도를 연관시키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1970년대 군사정권에 의해 확고한 국가관과 민족우월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의도적으로 ‘화랑=태권도’를 이식하고 확장시켰다.
당시 태권도교본(품세 편) 발간을 주도한 이종우 원로(전 국기원 부원장)는 “태권도 세계화를 위해서 태권도 역사를 정립해야 하는데, 마땅히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신라 화랑을 가져온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태권도의 역사는 한국 국가주의의 역사”라고 강조하고 있는 구효송 영산대 교수는 “일본 군국주의에 봉사했던 국가 중심의 무예관이 태권도에 그대로 이식됐고, 이는 반공정권과 군사정권을 거치며 민족주의적으로 포장됐다”고 지적한다. 동의한다. 당시 정권이 ‘용감한 무사’, ‘충효 청년’이라는 이미지를 화랑에 덧씌웠고, 태권도계도 이러한 화랑 이미지를 태권도에 이식시켰다.
이제 화랑을 내세워 태권도와 연관지으려는 학설과 주장 등 ‘견강부회(牽强附會)’는 사라져야 한다. 민족-반공-국수주의 색채를 띠면서 군사 독재정권의 입맛에 따라 왜곡되어온 화랑을 태권도 역사와 정신 속에 포함시키는 오류는 바로 잡아야 한다.
< 서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