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1년 남겨놓고 사직, 제2의 인생 개척
-행정과 도장현장 오가며 '도장살리기' 주력
-"기법과 방법보다는 기본과 원칙이 살아야"
“그동안 근무했던 대한태권도협회(KTA)를 사직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중순, 이종천 KTA 사무2처장이 정년퇴직을 1년 남겨 놓고 사직했다. 2007년 책임연구원으로 근무를 시작한 지 18년 만이다. 그는 집안의 제안으로 새로운 일터에서 새 출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천 전 처장은 18년 동안 행정과 현장을 오가며 태권도장 지원사업과 심사 업무를 담당한 실무행정가였다. 제도권과 일선 도장 간의 소통과 교감을 위한 ‘창구(窓口) 역할’을 하며 △태권도지도자전문교육과정 시행 △전국태권도장 경영·지도법 경진대회 기획 개최 △태권도장 교육·산업박람회 기획 개최 △태권도 표준교육과정 개발 등에 힘을 기울였다.
<태권투데이미디어>는 이종천 전 처장의 행정 경험과 정책 철학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기록형 인터뷰’를 마련했다. <편집자>
지난해 12월, 대한태권도협회 전·현직 교육강사들이 마련한 퇴직 기념자리에서 이종천 전 처장이 강사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장면 1]
KTA는 2007년부터 도장 활성화 중단기 정책을 수립하고 도장 지원을 위한 각종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도장 지원을 위한 정책 수립과 추진에 들어가는 예산은 심사추천비를 인상(응심자 1인당 1,500원), 5억 4천만 원을 편성해 놓았다. 당시 연간 심사 응심자는 약 45만 명이었다.
2007년 4월, KTA는 올림픽파크텔에서 제1차 도장지원특별위원회(위원장 윤웅석)를 열고, 도장 지원사업의 추진 계획(안)과 예산 배정의 적합성과 타당성을 심의했다. 이날 이종천 도장지원특위 간사(KTA 책임연구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장 지원사업의 주요 방향은 일선 도장 경영에 직접적인 지원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닙니다. 도장 교육과 심사 내용 연구, 지도자 연수를 통해 태권도의 교육 수준을 향상시키고 태권도의 사회적 경쟁력을 높이는 것입니다.”
2007년 제1차 도장지원특별위원회 회의에서 당시 이종천 간사(KTA 책임연구원)가 도장지원 예산과 추진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왼쪽 도표는 2007년 도장지원사업 소요 예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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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KTA가 1박 2일간 무주 태권도원에서 ‘KTA태권도장교육·산업박람회'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이번 박람회는 KTA와 태권도원이 공동 주최한 행사로 △40개 이상의 우수강좌 선택 청강 △관장, 매니저 등 직분에 따라 들을 수 있는 태권도콘서트 △태권도 산업체전으로 진행됐다. 교육 강좌는 우수 멘토들과 1:1로 질의응답이 가능했고, 신청한 강좌를 들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당시 이종천 부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동안 KTA에서 진행했던 도장지원 사업을 통해 발굴한 모든 교육과 결과물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태권도장교육박람회입니다. 도장 경영에 힘든 지도자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을, 미래 지도자인 사범과 학생들에게는 희망과 비전을, 매니저들에게는 수련생과 학부모 관리 등 구체적인 사례와 대안을 제시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2017년 무주 태권도원에서 열린 ‘KTA태권도장교육·산업박람회'에서 이종천 부장이 강사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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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A는 2019년 일선 태권도장에 ‘태권도 표준교육과정’을 보급·적용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다. 지난 2019년 ‘1차 KTA 태권도 표준교육과정’을 개발한 데 이어 2024년 ‘2차 태권도 표준교육과정 개발’을 완료했다. 이에 대해 이종천 사무2처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KTA는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을 개발해 보급하고, 일선 도장에서는 이를 기준으로 개별 도장에 맞는 맞춤형 교육과정을 지도하는 것이 도장 성장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유급자의 품·단 응심 기간을 18개월로 정의하는 부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태권도계가 미래를 위해 우리 사회와 함께 해야 하는 일이고, 도장 지도자들이 지켜야 하는 약속이어야 합니다. 결국 일선 도장은 도장교육체계 적용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장기 수련생을 확보할 수 있고, 승급심사를 통해서 도장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9년 12월, 이종천 도장사업부장이 표준 교육과정표 작성(안)을 설명하고 있다.
Q. 재직 기간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정책과 사업은 무엇이었나요.
A.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스스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타인의 평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도자들의 변화와 도장 성장에 기여했다는 지도자들의 평가를 들을 때 보람이 있었습니다. 정책으로는 천차만별이었던 도장등록비를 3백만 원으로 통일한 것이고, 전국 도장에 적용할 표준교육과정을 만든 것도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0년 전부터 이슈였던 어린이보호차량 동승보호자 탑승기준을 정부와 협의할 때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태권도계의 의견을 반영해 정부 조치를 완화·유예한 것과 KTA에 도장등록 기준과 심사관리 기준을 마련한 것이 생각납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대응 태권도장 지원 TF 회의를 마치고 이종천 처장(둘째줄 왼쪽에서 두번째)과 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Q. 태권도장 표준교육과정은 언제 어떤 배경 속에서 시작했나요. 그리고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입니까.
A. KTA 태권도장 표준교육과정은 전 세계 무술종목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교육과정일 것입니다. 대학시절 체육교육과정을 공부하면서 ‘왜 같은 교육 공간인데, 태권도장은 없지?’라는 문제의식이 잠재되어 있다가 도장지원사업을 담당하면서 2010년부터 준비했어요. 그 후 교과서 표준교육과정 작업에 참여한 중앙대학교 유정애 교수를 만난 구체적인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점을 둔 것은 태권도장의 교육체계를 통해 국민들과 수련생들에게 태권도 교육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교육 기간을 통일하는 것이었습니다.
2024년 11월, 대한태권도협회 회의실에서 이종천 처장과 교육강사들이 표준교육과정 개발 회의를 하고 있다.
Q. 표준교육과정과 연계해 교육 강사들을 양성한 까닭이 궁금합니다.
A. 어떠한 단체, 특히 교육단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능력과 수준이 그 집단의 능력과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태권도 지도자들의 수준은 교육을 통해 향상 시킬 수 있으며, 그 목적을 이루려면 지도자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우수한 강사들을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KTA 표준교육강사를 배출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Q. 2015년 태권도장교육·산업박람회를 추진한 배경도 궁금합니다.
A. 대학을 다닐 때 공대에서는 자동차조립경진대회를 하고 음대에서는 콩쿠르(concours) 등을 하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재주와 재량을 뽐낼 수 있는 장(場)이 있었는데, 태권도는 경기밖에 그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교수님들 찾아가 전공생들이 향후 자신의 도장경영과 지도법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뽐내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제안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후 90년대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마샬아트 슈퍼쇼를 가게 되었는데, 슈퍼쇼의 중심은 태권도인데 정작 한국의 태권도는 없었습니다. 그때 기회가 된다면 이것보다 더 교육적이고 산업적인 행사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대한태권도협회에 입사해 기회가 주어졌고 기획안을 작성해서 당시 류호윤 부장에게 보고를 해서 태권도원에서 1회 박람회를 개최하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이 있었지만 태권도원을 가득 메운 도장차량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하게 되었죠. 당시 주제는 ‘보고, 듣고, 물을 수 있는 태권도장 박람회’였습니다. 즉, 도장 지도자들을 위한 맞춤형 박람회였던 것이죠. 앞으로 박람회는 제2의 도장 산업과 교육을 위해 태권도 제도권에서 정책적으로 지원·육성해야 합니다.
Q. 행정가 시선에서 도장 활성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도장은 이중적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 사업장이이면서 개인별 자생적 영역으로만 둘 수 없는 아주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죠. ‘도장 활성화’라고 하는 것은 구성원과 집단 전체를 의미하며, 정부나 제도권의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도장 활성화가 아닌 도장 생존을 위한 조건으로는 지도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열심히 하지만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해야 할 시기가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2007년부터 18년 동안 대한태권도협회 도장 지원과 심사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아쉬움과 보람 등 소회가 남다를 텐데요.
A. 그렇습니다. 한두 가지만 이야기 하자면 도장지원 사업의 정체성입니다. 지금과 같은 도장 현실과 17개 시도협회와의 환경이 2010년대에만 있었어도 명확한 정의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칭 ‘중앙전산등록제도’는 아쉽습니다. 2007년 도장지원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논의 했던 사업인데 도장과 수련생 현황을 데이터화 해야 합니다. 데이터가 있어야 정책을 만들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현황은 없고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 합니다. 이래서는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고 선제적 정책을 추진할 수 없습니다. 이런 부분이 아쉽습니다.
지난해 12월, 이종천 처장(왼쪽)이 사직하면서 진재성 교육강사와 그동안 활동을 되돌아보며 '엄지척'을 하고 있다.
Q. 앞으로 대한태권도협회가 도장지원을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과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대한태권도협회라는 거대한 조직을 움직이고 지탱하는 데는 두 개의 큰 바퀴가 있습니다.하나는 도장이고, 하나는 경기입니다. 이 두 바퀴는 우선 순위와 크기의 문제가 아닙니다. 동일한 가치와 동일한 의미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정의를 바로 세우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인력도 예산도 사업도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도장은 준비할 것은 더 많습니다. 그것을 요약하기는 쉽지 않지만, ‘도장이 미래 생존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지도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으면 실천하면 되고 모르면 공부해야 합니다. KTA 강사들을 활용하면 정확한 진단과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Q. 일선 지도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요.
A. 얼마 전 캐나다에서 도장을 경영하는 분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5개 정도 도장을 경영 하면서 연간 몇 백억 정도의 매출을 올리는 분이었습니다. 그에게 오늘의 도장을 만들기 위해 아내와 고생했던 이야기부터 경영과 지도 노하우를 들으면서, 성공한 비법을 이야기해 달라 하니까 그의 답이 이랬습니다. 가장 열심히 잘 가르치는 것입니다.
도장 사범이라면 이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고 기법은 방법일 뿐이죠. 그의 평범하지만 진리인 대답 속에 우리 모두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요. 기법과 방법이 우선되기보다는 기본과 원칙이 살아 있는 도장, 그리고 그런 지도자들이 성공한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편 그와 함께 활동했던 진재성 KTA 교육강사는 "대한태권도협회 도장지원사업 대표 슬로건이었던 '내가 변하면 도장이 변하고, 도장이 변하면 가정이 변하고, 가정이 변하면 나라가 변한다'는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이종천 처장님의 삶 그 자체였다"며 "일선 도장의 변화와 성장을 '교육'이라는 가장 본질적인 가치로 풀어내며, 묵묵하고 단호하게 도장을 위해 헌신해온 시간과 덕분에 수많은 도장들이 다시 숨 쉬었고, 지도자들은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김동석 대표-서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