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우간다에서 지도 경험 쌓고 2021년부터 포르투갈에서 활동
*포르투갈 태권도 인구 적어 양적 보급 우선, 질적 성장도 조화롭게 추구
*"파견 사범 처우 개선되어야 긍지와 위상 높아지고 활동 범위 넓어져"
*리스본대학교 체육대학에 태권도 전공과 태권도학과 개설 위해 노력

2025년 9월 23일 오후 3시, 포르투갈 리스본대학교 체육대학. 이정훈 태권도 사범(37)이 유도훈련장에서 체육대학 부학장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리스본대학교 개교 이래 처음으로 체육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될 태권도 체험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로 보였다.

2025년 9월 23일, 이정훈 사범(왼쪽)이 리스본대학교 체육대학 부학장과 태권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옆에는 리스본대학교 스포츠과학부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태권도 시범을 관람하고 체험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화성의과학대학교 태권도 시범단이 리스본대학교, 그것도 유도장에서 고난도의 화려한 시범을 펼쳤다. 난생 처음 태권도의 역동적인 동작과 격파 기술을 본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시범이 끝난 후 학생들은 태권도 기본동작과 발차기, 그리고 격파를 체험했다. 학생들은 처음 해보는 태권도 동작과 기술을 신기해 하면서도 체육 전공 학생답게 익숙하게 따라 했다.

리스본대학교 체육 전공 학생들이 태권도 격파 체험을 하고 있다.

이날 리스본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태권도 시범과 체험은 이정훈 사범과 주(駐)포르투갈한국대사관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이 사범은 “리스본대학교는 우리나라 서울대학교와 같은 곳이다. 앞으로 리스본대학교 체육대학에 태권도 전공 또는 태권도학과를 개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기원 정부파견사범이다. 그가 걸어온 태권도 삶과 포르투갈에서의 태권도 보급 활동, 그리고 꿈과 목표는 무엇일까.

#악동에서 태권도 겨루기 선수로 성장

이정훈 사범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장난꾸러기였다. 친구들과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고 마음대로 안 되면 성질부리는 못된 아이였다. 선생님과 친구 부모님 등에게 혼나는 것이 일상이던 어느 날, 태권도장에 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이 사범의 악동 같은 행동과 기질은 태권도 수련과 규칙 속에서 칭찬과 박수를 받게 되었다. 기합과 주먹을 더 세게 지르고, 더 강하게 발을 차면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였을까? 명절에 부모님과 전라도 시골에 내려갔어도 관장님께 전화를 걸어 “언제 다시 도장 문 여나요? 빨리 열어주세요”라고 애원할 만큼 태권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대단했다.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이 끝나갈 즈음, 풍생중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다.

“정훈아, 태권도 선수할거니?”
아버지께서 물으셨다.
“응, 할거야!”

이 사범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말문을 열었다.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나중에 사람들에게 ‘무식한 운동선수’를 아들로 뒀다는 말을 안 듣게 해라.”
“당연하죠!”
이렇게 이 사범은 태권도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풍생중에 진학한 그는 풍생고와 단국대에서 겨루기 선수로 활동했다. 그 후 2004년부터 2008년까지 태국·스코틀랜드·필리핀·대만·호주대표팀 초청으로 파트너십 훈련을 지원했고, 2012년에는 세계태권도연맹 태권도 시범단에서 단원과 통역 활동을 병행했다.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태권도 지도자 활동

이와 함께 태권도 지도자 역량을 발휘했다. 2009년부터 2011년에는 Monash 과학고등학교와 K-tigers KTD 센터에서 지도 경험을 쌓은 후 파라과이 국가대표팀과 국립경찰학교 태권도 지도(2014∼16), 천안교도소 외국인 수감자 태권도 교육(2016∼18), 단국대 외국인 교환학생 태권도 강의(2016∼18). 우간다 국가대표팀 감독(2019∼2021), 우간다 마케렐레대학교 태권도 코치 및 교수(2020∼21)로 활동하며 자신의 역량을 쌓아나갔다.

2021년 우간다에서 활동할 당시, 이정훈 사범이 우간다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렇게 활동하면서도 이 사범의 마음 속에는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정부파견사범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릴 때는 단순히 해외에서 활동하는 태권도 지도자가 되고 싶었어요. 해외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것을 꿈꾸고 좋아해서 성인이 되고부터는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TPC)를 통해 트르키예에 파견되어 활동했고, 국제협력단(KOICA)를 통해 파라과이에서 활동하면서 정부파견사범에 대한 마음이 커졌어요.”

이 사범은 단순히 해외에 파견되어 태권도를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으로 태권도 보급과 저변확대를 위한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만들고, 현지 고위층 인사들과 우호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파견사범으로서 현지에서 ‘힘(역량)’을 갖춰 효율적이고 짜임새 있게 태권도를 보급하며 대한민국을 알릴 수 있다고 여겼다.

2022년 이정훈 사범이 국기원에서 열린 정부파견사범 보수교육에서 품새를 하고 있다.

이 사범은 정부파견사범의 역할과 책무에 대해 “외교관처럼 3년마다 순환근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에 오랫동안 머물며 10년, 20년, 30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쳐서 성장시키며 현지에서 ‘존재감’을 보여줄 때 진정한 파견 사범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부터 정부파견사범의 길을 걷다

그는 정부파견사범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다섯 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2018년 최종 합격했다. 우간다로 파견된 후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귀국한 이 사범은 포르투갈에 도전하기 위해 재시험에 응시해 2021년 합격했다.

2021년 8월, 포르투갈에 도착한 그는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에 현지의 태권도 환경과 현실을 파악했다. 태권도 현황에 대해 말하는 사람마다 달라서 정확한 통계를 내기가 어려웠지만, 포르투갈 전역에 100~200개의 태권도 클럽이 있고.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태권도 대회 중 겨루기에는 300~400명, 품새에는 300~400명 정도 참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같은 현황과 통계를 토대로 이 사범은 △국기원 태권도 시범단 초청(2021) △품새 유럽선수권대회 포르투갈 주최(2021) △세계태권도연수원 승품·단 심사위원 및 사범자격증 연수(2022) △포르투갈 해군사관학교 생도 태권도 지도(2022) △육군사관학교 생도 태권도 지도(2022) △NOVA대학교 학생 태권도 수업(2022) 등을 진행했다.

이와 함께 포르투갈태권도협회 기술위원장을 맡아 2024년 홍콩 품새세계선수권대회 대표팀 감독과 탈린 품새 유럽선수권대회 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면서 공교육 태권도 프로젝트 일환으로 포르투갈 국립학교 10곳에서 태권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매년 주(駐)포르투갈 한국대사배태권도대회를 주도적으로 준비해 개최하며, 태권도 시범공연과 세미나를 실시하고 있다.

2025년 9월 20일, 포르투갈 가이아에서 화성의과학대학교 태권도 시범단이 태권도 세미나를 하기 전 이정훈 사범(오른쪽)이 포르투갈태권도협회 회장과 세미나 진행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정훈 사범의 포르투갈 보급 활동과 목표

다음은 이 사범과 일문일답. 인터뷰는 2025년 9월 17일부터 23일까지 화성의과학대학교 태권도시범단이 포르투갈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Q. 어디에 중점을 두고 포르투갈에서 활동하고 있나.
A. 활동의 목적은 다양하다. 포르투갈 파견 초기에는 ‘태권도를 질적으로 보급하기 위해 국가 예산을 더 확보하고 수준 높게 태권도를 보급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는 반대로 생각하고 있다. 아직 포르투갈은 양적 보급이 필요하다. 태권도 인구를 더 늘리고 선수층을 더 두텁게 해서 성장시키는 방향에 중점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꼭 양적인 태권도 보급만 목표로 삼은 것은 아니고, 양적 발전과 질적 발전 두 방향이 골고루 균형있게 성장하도록 포르투갈태권도협회와 논의하고 있다. 현재 경찰과 사법경찰 쪽과 계속 접촉하고 있다. 리스본대학교 체육대학에 태권도학과 또는 태권도 전공을 개설하는 것도 목표로 하고 있다.

Q. 포르투갈 활동 과정에서 보람과 고충.
A. 먼저 포르투갈은 유럽연합(EU)에 속한 유럽 국가이기에 내가 그 전에 활동해왔던 남미와 아프리카 나라와는 달랐다. 파라과이와 우간다에서는 ‘무대포 정신’으로 밀어붙여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가능했다면, 여기에서는 태권도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고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 너무 많다.

그렇지만 해군, 육군, 경찰, 사법경찰 등에 태권도를 보급하기 위해 한 단계 한 단계 이뤄가며 입지를 다져나가는 것이 뿌듯하고 보람을 느끼고 있다. 또한 현지 지도자들과 협회 등에서 나를 찾아주고 좋아해주며 점차 인정을 해주는 것을 느낄 때 ‘아,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하고 생각한다.

정부파견사범들은 해외에서 무거운 임무와 책임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데, 어떻게 현지에서 고충과 애환 없이 살아가겠는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환경을 탓하기 보다는 스스로 헤쳐 나가며 소임을 다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파견 사범에 대한 처우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처우가 개선된다면 파견 사범에 대한 긍지와 위상이 높아지고, 활동 범위가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살다보면 내가 하는 어떤 일들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고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알아봐주면 고맙고 좋지 않은가. 그냥 파견 사범들이 하는 역할과 성과들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큰 업적을 이룬 선배 파견 사범들은 그만큼 누군가가 알아주고 인정해주면 동기부여도 되고 힘이 난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에 파견되어 고생하는 선배 사범님들과 후배 사범님들을 항상 응원한다.

정부파견사범들의 처우개선을 바라고 있는 이정훈 사범. 그는 "지금보다 저금 더 처우가 개선되면 파견 사범들의 긍지와 위상이 높아지고, 활동 범위가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Q. 앞으로 꿈과 목표.
A. 아내와 농담을 하다가 ‘복권에 당첨되면 뭐 할거야?’(유럽 로또 2000~3000억)라는 질문에 나는 일단 빌딩하나 사고 파견사범 활동을 즐기면서 하면서 태권도 활동에 돈을 쓰고 싶다고 대답했다. 파견 사범은 큰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다. 다만 이왕이면 미래에는 태권도에 돈도 많이 쓰고 기여하며 제자들에게 존경받는 사범이 되고 싶다.

<서성원 기자>